간호 전문 인력으로서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선배들의 역사적 흔적과 발자취는 간호조무사의 다가올 100년 미래를 향해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해 줍니다.
▲ 산아 제한 계몽운동. 간호조무사는 1960년대 가족계획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역들이었습니다.(1967년)
▲ 사회적 질병이었던 결핵 퇴치의 핵심역할은 간호조무사가 수행했습니다.(1960년대후반)
▲ 보건사회부 장관 명의로 발급된 간호보조원 면허증(1967년 ~ 1973년)
▲ 서독병원에서 약품관리 업무중인 간호조무사
간호조무사의 모태는 정부가 인구 정책의 일환으로 1962년 가족계획 사업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전국에 가족계획 상담소를 설치, 전국의 면 단위마다 1명이상씩 가족계획 계몽요원을 배치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이라 전국의 면(面) 단위에 설치된 ‘보건지소’에 간호 대체인력으로 간호조무사를 배치하였습니다.
1966년 7월 25일 대통령령 제 2665호로 ‘의료보조원법 시행령’ 제1조를 개정하여 ‘의료보조원’의 종별에 7번째로 ‘간호보조원’ 신설하였으며, 간호보조원의 업무범위는 ‘보건사회부령’이 정하도록 위임하였습니다.
1967년부터 1973년까지 가족계획 계몽요원 대상자 총 5,147명은 교육실시 후 국가고시를 거쳐 ‘의료보조원’ 합격증서를 취득한 후 보건복지부장관 명의의 간호조무사(간호보조원) 면허증을 발급받았습니다.
이후 이들은 정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하에 추진된 가족계획사업, 예방접종사업, 모자보건사업, 결핵퇴치사업 등 국가보건의료 정책사업에 절대 부족한 간호사의 대체 인력으로서, 실질적으로 국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국민의 건강지킴이 역할을 해왔습니다.
간호조무사의 역사는 1960년대 가난하고 힘없던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역사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늘날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의료강국이 되기까지의 우리나라 보건·의료 변천사를 현장에서 몸으로 직접 느끼며 함께 변화,발전해온 역사임을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해외개발공사를 통해 해외에 진출한 간호조무사 현황을 보면 지난 1966년이래 서독 4,061명, 스위스 33명, 오스트리아 60명등입니다.
특히 서독연방정부 및 주정부측에서는 독일에 있는 한국간호조무사들의 성실성과 우수성을 고려하여 독일 체류연장을 특별히 고려해 주기도 했습니다.
간호조무사 약 4천여명 중 2천여명이 정예기술자로 체류하게 되었으며, 간호사와도 신분상 구별없이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한국간호조무사들은 친절하고 정성어린 서비스로 서독정부의 고위관리들이 한국간호조무사에게만 간호를 받겠다고 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간호조무사로서 뿐만아니라 대한민국 국위선양에 한몫을 단단히 해낸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배들입니다.
1970년대 이들 간호인력은 한국경제 성장에도 종잣돈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연간 5천만 달러로, 한때 한국 GNP의 2%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서독정부가 이들에게 제공할 3년치 노동력과 노임을 담보로 1억 5천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한국정부에 제공케 한 애국자들이기도 합니다. 1970년대 경제개발시대에 광부와 간호인력(간호조무사, 간호사)이 서독에 파견되어 외화획득에 앞장섰고, 그 외화를 바탕으로 우리나라는 경제부흥을 이루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창립총회(1973년 7월 28일)
▲ 제1회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정기총회(1975년 5월 10일)
▲ 임시 대의원총회(1975년 6월 28일)
간호조무사는 국가정책의 최전방 일꾼으로서 국민 기초 건강의 주요 역할을 담당하는 주요 인력이었음에도 사회적 관심은 부족하기만 하였습니다
간호조무사 모태로서 이미 왕성하게 국가 보건 정책을 수행해 왔던 보건요원들은 1974년초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간호보조원 면허증이 갑자기 시·도지사 명의의 자격증으로 변경 발급됨으로써 간호조무사 위상에 직격탄을 맞게 되었습니다.
모래알 같은 개개인의 힘으로는 불이익에 대응할 수 없을을 절감하면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단체 설립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 바야흐로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1974년 12월 설립의 문턱에 서게 되었습니다.
일선의 의료기관 근무 간호조무사들은 1973년 7월 28일 서울에서 협회 창립 총회를 열고 초대 회장에 김명자 회장을 선출함으로써 간호조무사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일선 의료기관 근무 간호조무사들은 1973년 7월 28일 서울에서 협회 창립 총회를 열고 초대회장에 김명자 회장을 선출함으로써 간호조무사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1974년 12월 보건복지부(허가번호 1880)로부터 '한국간호보조원협회' 사단법인체 설립허가를 받아 명실공히 간호조무사 권인단체로서 위치를 확고히 하고, 회원의 권익 및 지위향상을 위한 사단법인체로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회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사업들을 추진하며, 간호조무사를 전문인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권익사업을 관철하고, 정책추진을 위해 국회·정부등과 긴밀하게 교류해왔습니다.
1987년에는 회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간호보조원'이란 명칭을 회원들이 떳떳한 직업인의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국민보건향상에 헌신할 수 있도록 '간호조무사' 명칭으로 개선되는 것을 관철시켰습니다.
그 외 회원들의 권익을 위한 회원 숙원 사업들은 하나 둘 값진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후 회원들과 함께 호흡하며 성장해왔습니다.
간호조무사 제도가 탄생된지 벌써 50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치열했던 지난 50년 역사의 무게를 짊어지고 미래 100년을 향한 간호조무사의 새 역사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전의 발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간호조무사들은 앞으로 다가올 100년을 향한 새로운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대장정의 길에 올라야 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다가오는 미래는 변화의 파도가 더 거세게 밀려올 것입니다.
선배들이 이룩한 고귀한 땀의 역사를 소중한 교훈으로 되살려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충분히 타고 갈 수 있는 만반의 준비와 각오를 다져야 할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역사에서 최고의 역량을 가진 어떠한 수장이라 할지라도 혼자의 힘은 미약할 뿐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중앙회 산하 시·도회가, 시도회 산하 각 조직들이, 그 속에 속한 회원 한명 한명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그 역량이 하나로 응집될 때 엄청난 힘이 나오게 된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습니다.
간호조무사 발전의 중심축 역할을 해온 협회가 제시한 비전과 철학을 공감하고 회원들이 하나가 되어 간호조무사의 미래는 새로운 도약의 항로를 열어나갈 것입니다.